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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뒤에 오는 위기짧은 글 2022. 10. 28. 22:05
모세의 지도 아래 광야길과 에돔, 모압과 암몬 땅을 지나고 가나안 동쪽에서 바산 왕 시혼과 옥을 쳐서 동쪽 정벌을 성공했던 이스라엘은 이제 모세가 아닌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의 인도 아래 가나안 서쪽 정벌을 앞두고 있었다. 여호수아가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그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 수 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함께 하느니라"(수 1:9). 또한 하나님께선 이스라엘로 하여금 요단강을 마른땅처럼 건너게 하심으로 홍해를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다시 기억나게 하시고 가나안 족속인 라합의 입으로 그들이 이스라엘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알게 하셨다.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수 2:9). 그리고 길갈에서 이스라엘에게 할례를 행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임을 알게 하셨다.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셨다"(수 5:9).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의 첫 전투는 여리고 정벌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명령을 내리셨다. 6일 동안은 하루에 한 번 언약궤를 앞세워 그 성을 돌고 7일째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양각 나팔을 길게 불게 하셨다. 그들의 이전 전투 방식과는 전혀 다른 것이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었다. 이는 전쟁의 주체가 누구인지 이스라엘에게 알게 하신 것과 동시에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목도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셨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보다 앞서 행하셨고,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싸우신다는 것을 기억나며 목도하며 고백하게 하셨다. 여리고 성의 무너짐을 보았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 놀라운 이적은 여호수아를 비롯한 모든 이스라엘을 들뜨게 했다. 이는 아이 성을 정탐하고 돌아온 이의 말로 알 수 있다.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고 보내어 수고롭게 하시 마소서"(수 7:3). 물론 아이 성은 작은 성에 불과했고 성인 남녀의 수도 만 이천 명에 불과했다. "그날에 엎드러진 아이 사람들은 남녀가 모두 만 이천 명이라"(수 8:25). 하지만 첫 전투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약 삼천 명의 인원이 올라가서 36명이 죽고 나머지는 도망쳤으며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되었다.(수 7:5).
왜 이런 결과가 되었을까? 물론 그 원인이 아간의 범죄로 인함이지만 여호수아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진을 칠 때 성막을 중심으로 12지파가 진을 쳤다. 즉, 성막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께 묻고 그 답을 구하였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강하고 담대하고 하시려고 그를 만나셨다. 또한 여호와의 군대 장관을 보내셨다.(수 5:14). 여리고 성을 칠 때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묻고 그 방법을 구했다. 여호수아가 먼저 구하였는지, 하나님께서 먼저 말씀하셨는지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후에 전투에 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리고의 승리 이후 이들은 승리에 취해서 교만하여졌다. 당대 최대의 성이라 할 수 있는 여리고 성을 쉽게 함락시킨 그들에게 아이 성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록 작았다. 그들의 눈에 아이 전투의 승리가 눈에 보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지도 않고 그들 스스로 군대를 편성하고 전투를 시작하였고 그 결과 패배와 두려움으로 그들의 마음이 물처럼 녹게 되었다.
눈앞의 승리에 취해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라 온전희 나의 노력과 능력으로 이룬 것으로 생각했다. 우리는 하나님 손에 들린 몽둥이에 불과한데 마치 내가 하나님을 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빠져 살고 있다.
우리는 결코 내 삶의 주인이 아니다. 우리는 결코 내 삶은 계획하고 이끌 수 없다. 내 삶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 놓일 때 비로소 살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하나님께 묻고 그분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내가 가는 이 길의 방향을 하나님께 묻고 또한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우심, 하나님의 능력을 구해야 한다. 눈앞의 성공에 만족하는 어리석음이 아니라 그 성공 너머 하나님께서 예배해 놓으신 더 큰 성공, 더 좋은 것을 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